“이제 하나의 직업만 가져서는 안됩니다.”
한국인으로 일본에서 성공한 여자. 일본사람들에게 ‘일본을 파는 여자’로 유명한 (주)린카이여행사 대표 이용숙씨.
그는 “세상의 변화는 필연”이라면서 “사람은 그 변화의 리듬을 타고 출렁거릴 수 있어야 성공한다”고 강조한다. 리듬을 타는 방법은 일의 선택 폭을 넓혀 여러가지 일을 하는 것. 그에 따르면 현대인에게 투잡은 필수고 스리잡은 기본이다. 그 이상의 일도 선택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안다. 누군들 여러 분야의 일을 하고 싶지 않겠는가. 자아성취도 하고 그만큼의 수익도 가능한데.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알아도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는 “아니, 나 같은 사람도 하는데 왜 나보다 더 잘난 사람들이 못하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들려준다.
성악을 전공하던 대학 1학년 때. 그는 우연히 들른 미용실 원장의 강권으로 미스코리아 예선대회에 나가 포토제닉상을 수상하며 충남 대표로 선발됐을 만큼 미모를 자랑했다. 하지만 그의 삶은 행복과 거리가 멀었다. 2학년 때인가. 한 남자를 알게 되어 얼마 후 아예 결혼까지 하게 된 것만 해도 그렇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보니 그 남자는 결핵환자였고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피나는 삶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그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몇가지 작은 사업을 벌이며 돈의 흐름을 터득했다. 그리고 10년 후. 그는 우여곡절 끝에 그간의 결혼생활을 마치고 아이들을 데리고 무일푼으로 집을 나왔다. 당장 생활이 궁핍했다.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신문에서 일본의 도넛 회사 MMC 신입사원 모집 공고를 보게 된다. 무작정 응모했다. 직종은 도넛을 운반하는 트럭 운전기사. 일본어도 모르는데 운 좋게 합격했다.
1988년이었다. 그의 삶은 여기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선 그는 회사 사람들과의 대화를 위해 퇴근하면 곧바로 일본어학원으로 달려갔다.
일할 때는 꼼꼼하고 철저한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작은 사업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 장부 외에 개인 장부를 따로 작성했다. 개인 장부에는 회사 장부에 잘못된 점을 꼼꼼히 체크하고 개선점까지 적어뒀다 나중에 회사에 건의했다. 그러면서 그는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해 얼마 후에는 관리부장으로 전격 승진을 하게 된다.
MMC가 한국을 떠날 때 그도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오사카 린카이 호텔 체인 사장을 소개받아 외국인 담당 영업부장과 통역 가이드 일을 하게 된다. 순식간에 일본사람들도 놀랄 만큼 많은 인맥을 형성하며 그는 일취월장 자신을 키워갔다. 그러다 자신이 직접 여행사를 창업해 독립하게 된다. 그것이 지금의 린카이여행사다. 한국인이 일본에 근거를 둔 여행사를 창업한 것이다.
이 여행사는 지금 서울 무교동과 오사카, 도쿄에 각각 사무실을 두고 고객 수송부터 숙박, 교통, 통역 등 모든 일을 진행한다. 일반 고객 일뿐 아니라 기업이나 한류 관련 일도 한다. 일본 내 부동산, 구인 구직까지도 필요한 외국사람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간판은 여행사지만 외국인이 일본에 갈 때 혹은 일본에서 살고자 할 때 필요한 모든 일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사람들 입장에서는 ‘일본을 파는 여자’인 셈이다. 또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12개현과 시고쿠 4개현, 그리고 교토시의 한국관광사무소 대표도 그의 일이다.
그의 성공은 일본에서 더 유명하다. 일본 NHK-TV의 ‘헬로 닛폰’프로그램에서 ‘일본 열도를 달리는 여자 이용숙’이란 타이틀로 1시간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기도 하고 마이니치신문 전국판에 ‘관광사업은 10차 산업’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사례가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2006년 2월에는 일본 고이즈미 총리를 비롯해 아베 관방장관(지금의 총리)에게 일본 관광정책을 비판하고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조언하기도 했다.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예정시간을 넘겨가며 그의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KBS-TV에 ‘이것이 인생이다’에서 그의 삶을 조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직업 선택의 폭을 넓히라는 자신의 말처럼 외연을 확장했다. 기업컨설턴트가 바로 그것이다. 오랜 일본 생활을 바탕으로 일본 인맥과 일본 소비자의 입장이 필요한 기업에 컨설팅 조언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관광업계의 초청강사, 대학 강사도 그의 일이다. 강의를 원하는 곳만 해도 수십 군데. 이미 일년치가 꽉차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하며 각계각층의 사람을 만나면서 그의 인맥은 엄청나게 확장됐다. 그에게 이 사람들이 모두 재산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에는 사람 만나는 ‘행복함’이 가득하다. 그 ‘행복함’의 속살에는 “삶과 직업의 외연을 넓히라”는 삶의 철학이 숨겨져 있다.
〈황인원 선임기자 hiw@kyunghyang.com·사진|김기남기자 kknphoto@kyunghyang.com〉
- 경향신문이 만드는 生生스포츠! 스포츠칸, 구독신청 (http://smile.khan.co.kr) -
ⓒ 스포츠칸 & 미디어칸(http://www.sportskhan.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제공 ] 경향신문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0-11-06 14:26:01 부자되는법에서 이동 됨]